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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3월 기도편지: 루카스종 선교사 - 조국을 위한 기도 제목

사랑하는 새생명비전교회, 기도의 동역자님들께

2019년. 3월.


(제 81 신)


(1) 독립 만세

그동안 평안하셨는지요? 3.1절 100주년 맞이하심을 함께 기념하고 기억하고 축하하고 기뻐합니다. 그러나 아직 우리에게 온전한 축하와 기쁨이 없음은 온전한 독립된 나라를 꿈꾸며 희생하셨던 선열들의 그 희생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불완전한 나라가 우리의 근심이 되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100년의 세월이 지났으나 여전히 완전한 독립을 이루지 못한 나라들은 여전히 강대국들의 틈바구니에서 눈치를 보며 이리저리 몰리고 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는 더 심각한 분열의 영이 사회 요소요소를 산산조각 내듯이 갈라놓고 있고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신 것이 우리를 하나되게 하기 위함이었다고 사도 요한은 말합니다. (요한복음 11장 52절)


저희 부부는 하나된 온전한 조국을 원했던 선열들의 뜻을 이어받아 이 시대의 독립운동을 향한 꿈을 꾸며 지난 세월 영적 독립투사를 자처하며 살아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주셨던 제 인생의 사명이 에베소서 2장 14절입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그 막힌 담을 허무는 그 사역을 위해 저희를 다시 한국으로 부르신 것일까요?


통큰 꿈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한국 사회의 갈등을 풀어내는 그 일이 더 심각하고 중요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3일절 100주년을 맞이하며 여기 저기에서 특강 요청이 있었습니다. 특별히 외국에 있을 때, 여의도 000교회에서 저희 부부를 “3.1운동의 의미와 동아시아 평화를 위한 미래 구상"이라는 큰 모임에 초청해 주셨습니다. 3박4일로 열린 그 대회에서 장관 정치가들 뿐 아니라 백교수, 윤교수와 같은 저명한 역사학자와 보수와 진보를 막라한 시민 사회 운동가와 목회자 등 많은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 3.1운동의 의미를 더 깊이 배우고 묵상하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저와 아내 역시 토론자로 참석하였습니다. 오래전 독립 만세와 독립운동가들의 땀과 피가 흘렀던 통큰 꿈에 대한 주제 발표를 했는데 많은 반향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희 부부의 마음은 여전히 끝나지 않은 전쟁, 일제 잔재 속에서 여전히 신음하는 한국 사회의 깊은 분열의 영과 싸우느라 잠시도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같은 시간 베트남 하노이에서는 세기의 핵담판,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 사이에 벌어진 북미회담이 진행되고 있었고 결국 그것이 결렬이 되면서 3.1절을 맞았습니다. 100년전 선열들의 피값이 아직도 신원되고 있지 않음을 새삼 느끼며 기도 가운데 주신 마음은 3.1절 120주년 (기미년)에 하나된 조국을 허락하실 것에 대한 소망이었습니다.


그러나 3.1만세 운동의 의미는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큰 교훈을 안겨줍니다. 컨퍼런스에서도 3.1혁명이냐 운동이냐를 두고 많은 논란이 있었습니다. 동학란이라는 평가가 이제는 동학혁명으로 바뀐 것을 들어 3.1운동도 3.1혁명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결과의 실패냐 성공이냐를 떠나서 그것이 지닌 정신적 가치가 기독교적 평화운동에 맞닿아 있음을 생각하며 운동에 더 큰 방점을 찍어야 한다고 논증을 하였습니다.


100년 전 3.1만세 운동은 제국주의 식민지에 신음하던 아시아의 피압박 민족에게 그 당시 경이로운 감탄을 자아내었습니다. 동방의 작은 나라 조선이 총칼로 무장한 일제 경찰과 헌병의 무자비한 탄압 속에서 보여주었던 비폭력 평화행진의 모습은 인류 역사에 두고두고 남을 고귀한 인간정신의 승리였습니다. 중국 근대화에 앞장 섰던 북경대학 교수는 3.1운동을 극찬하며 그를 따라 배워 중국의 5.4운동을 이끌어내었고, 이어서 베트남에서도 독립운동을 촉발시켰습니다.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에 대한 기대감을 안고 파리 강화 회의로 떠났던 김00는 파리 시내에 한국공보국을 세우고 한국의 독립의지를 세계만방에 알리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때 같은 마음으로 달려왔던 베트남의 독립지사 청년 호치민이 한국공보국에서 인쇄기를 빌려쓰며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때부터 베트남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한국이 고마운 형제의 나라로 각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식민과 분단이라는 역사의 똑 같은 아픔을 겪었던 동병상린의 나라 베트남! 그 좋은 우방을 우리는 베트남 전쟁에 참여하여 양민들에게 많은 상처를 주었고 깊은 역사의 트라우마를 남겼습니다. 그 아픈 역사 속에서 다시 일어서는 베트남에 우리 기업들이 들어가서 다시 새 역사를 쓰고 있는 것이며, 박항서 감독의 축구외교로 이제 다시 회복의 길을 걷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 하노이 회담이 더 큰 아쉬움을 남깁니다.


외국에 있는 집에서 떠나오기 전, 우리민족을 위해 헌신했던 선교사 그리어슨의 막내 따님 도리스 께서 요양하고 있는 요양원을 다시 찾아갔습니다. 한국 00에서 사역하던 그리어스 선교사님은 조선 백성이 겪고 있던 일제의 끔찍한 무단 정치 속에서 조선인 보다 더 일본인을 미워했던 선교사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대다수의 외국 선교사들이 일본총독부의 지시를 받고 일본을 지지하여 제국주의 앞잡이라고 여겨지던 그 시절, 3.1운동을 준비하던 민족지도자들은 그리어슨 선교사를 찾아와 도움을 청하고 그의 집에서 독립선언서 수만장을 인쇄 배포하기에 이릅니다. 3.1운동과 직접 관련되어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독립훈장을 받은 4명의 선교사가 그리어슨, 스코필드, 바커, 마틴 등의 외국 선교사인 것을 생각하면 그 당시 외국 선교사들의 특별한 조선 사랑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어떻게든 100년전 우리를 위해 3.1운동을 함께 뛰었던 00 선교사님들에게 감사의 표시를 하고 싶었습니다. 90세의 나이에 하루종일 침대에 누워 계시지만, 정신은 맑고 똑똑하여 오직 아버지가 사랑했던 땅의 북한 백성과 남북의 통일만을 위해 기도하신다는 그 할머니께, 우리 민족을 대표하여 세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감사 카드를 전해드리며, 올해가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라고 말씀드리니 갑자기 두손을 번쩍 치켜세우며 “만세! 만세! 만세!”를 외치시는 것이 아닙니까?

00에서 일어난 최대의 기독교인들의 만세 운동을 이끌었던 00만세 운동의 그 날, 아버지가 피흘리는 조선 백성과 함께 했던 그 정신을 이 할머니 선교사님이 아직도 이어받고 계신 것을 보면서 감격의 눈물이 솟구쳤습니다.

(2) 선교 난민 여러나라를 오가던 제가 갑자기 발이 묶였습니다.

외국 영주권이 갱신이 안되는 바람에 가족들이 머물고 있는 장소로 들어갈 수 없는 난민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이번에 000에서 MBA석사학위를 마치고 00으로 돌아가는 두 제자를 마지막으로 만나고 돌보기 위해 00에 4박5일로 출장을 다녀왔는데, 그 기간 중에 하나님께서 기적 적으로 1년자리 왕복비자를 내 주었습니다. 제가 비자를 신청하면서 며칠만에 꼭 받아서 돌아가야 한다고 부탁하니 창구 직원이 모두 웃었습니다. 통상 1달 이상 걸리는 것을 3일만에 내달라고 하니 고개를 저으며 불가능하다고 말을 했는데, 막상 비자가 1년짜리 multiple visa로 나오자 그들이 깜짝 놀랄만큼 믿기힘든 일이었습니다. 그 바람에 겨울에 무사히 가족상봉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은혜를 체험하며 지난 한 학기 한국 대학에서의 강의를 마쳤습니다. 제자들과는 00 공항에서 눈시울을 붉히는 아쉬운 이별을 하면서 꼭 다시 만날 날을 기약했습니다.


저희 가족은 이제 25년의 세월을 돌고 돌아 다시 한국에 정착했습니다. 떠날 때 7살 아들을 데리고 세 식구였는데, 이제 막내 딸을 데리고 다시 세 식구가 돌아온 것입니다. 숱한 눈물을 뿌리며 한국을 떠났던 어린 아들이 어느새 결혼을 하여 지난 11월 27일 딸을 낳아 “ㅎㅇ"이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히브리대학에 교환학생을 다녀왔던 החיים(의영이는 “하나님의 임재”, 또는 히브리말로 “생명(life)”이라는 의미를 담아 “ㅎㅇ )”이라고 ​아기 이름을 지었습니다. 저희 부부는 손녀딸이와 더불어 그동안의 많은 영적 피로를 풀고 기쁨으로 지내며, 외국에 있는 집에서 꿈같은 겨울 방학을 아이들과 함께 보냈습니다. 그리고 두 아들을 외국에 있는 집에 두고 다시 길을 떠났습니다.


한국에 돌아오니 오래전 함께 기도하며 신앙 생활을 했던 한국의 모교회 분들은 세월의 간격을 훌쩍 뛰어넘어 여전히 반겨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그 시절 저희가 선교지를 떠나는 것을 아쉬워하며 저희가 고생할까봐 모두 반대했던 분들입니다. 그분들에게 아주 오래된 사랑과 정을 여전히 느낍니다. 그러나 너무나 변해버린 한국의 물리적 모습은 저희를 요소요소에서 당황하게 만듭니다.


기쁨의 교회 목사님께서 예배시간에 저희를 소개하시며 “선교외국인", “선교난민"이라고 하셨습니다. 물리적 정착을 넘어 심리적으로 사회적으로 또 다른 적응이 필요한 이방인이 된 듯 합니다.

그러나 만사에 감사한 것은 때를 따라 우리 가족을 옮기시고 새로운 거처를 허락하시며, 일할 곳과 섬길 수 있는 학생들을 붙여주셨기 때문입니다. 저희 부부는 이번 학기부터 한국대학에서 함께 강의를 하게 되었으며 허락하신 원룸 기숙사에서 지내게 됩니다. 세 식구가 지내기엔 너무 좁은 공간이라 막내 딸은 한국대학교의 기숙사에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막내 딸은 처음으로 부모 곁을 떠나 공동체 생활을 하게 되었기에 좋은 훈련의 기간이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선교지에서 오히려 여유로운 공간에서 지내다가 25년만에 돌아온 조국에서 진짜 선교사처럼 미니멀 라이프를 살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선교지에서 우리가 얼마나 많은 은혜를 누리고 살았는지 깨닫게 됩니다.


Y00의 사역이 끝나고, P00는 비자 문제로 못들어가게 된 이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저희 부부를 강권적으로 다시 한국으로 오게 하셨습니다. 한국의 학생들을 만나게 하시고 여러 장소에서 그동안의 경험을 살린 강의를 하게 만드십니다. 어쩌면 이 일을 위해 그 동안 훈련을 시키신 듯, 이제 앞으로 남은 시대를 열어가기 위해 가장 치열한 전쟁터 가운데 집어 넣으신 듯 합니다. 지금 한국 사회가 직면한 이 갈등을 어떻게 풀어가야할 지, 많은 기도가 필요합니다.


(3) 기도 열사

한국 대학 캠퍼스 안에 사니 여러가지 편리한 점이 많습니다. 바로 인접한 곳에 채플이 있으니 제일 좋은 것은 새벽기도를 가기가 쉽다는 것입니다. 아침에 학생들과 함께 새벽기도를 하는 것이 하루를 시작하는 힘이 됩니다.


제가 새벽기도에 다녀오는 동안 아내는 혼자 집에 남아 더 깊은 기도를 합니다. 요즘 아내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 목숨걸고 기도하는 “기도 열사”가 되었습니다. 복음을 복음답게 교회를 교회답게 성도를 성도답게, 그렇게 우리가 살았다면, 오늘날 조국의 형편이 조국의 교회가 이런 어려움에 직면했을까요?


3.1절 100주년 기념식상에서 래퍼 비와이 (Bewhy)가 불렀던 “코레아 우라"와 감옥에서 유관순과 같은 여성 열사들이 불렀던 그 기도의 가사를 정재일이 작곡하고 재미교포 가수, 박정현이 노래를 부릅니다. 100년의 시공을 꿰뚫는 역사의식, 그것을 노래하는 이 젊은이들이 이 시대의 희망입니다. 이들이야말로 기성세대를 부끄럽게하는 노래로 기도하는 이 시대의 독립 열사들입니다.


기도제목을 나눕니다.


1) 새로 시작하는 한국 생활에서 아내와 막내 하나가 잘 적응하도록 기도해 주세요. 좋은 이웃과 선생님 친구들을 만나 한국을 사랑하는 마음이 생길 수 있도록 기도해 주세요.


2) 제 강의와 성경공부 모임 (학생 및 신임교수들), 그리고 아내 최 교수의 강의(교회음악연습)

에서 택하여 부르신 학생들과 깊은 영적 교제를 나눌 수 있도록. 아울러 통큰꿈 프로젝트 2개를 시작하는데 지혜를 주시도록 기도 해 주세요.


3) 한국의 많은곳에서 특강 또는 설교 요청을 받고 있습니다. 작년에 통큰꿈 특강을 한 이후에

여러 대학원과 여러 지방 노회에서 초청이 오고 있습니다. 잘 분별하여 꼭 가야 할 곳을 택하게 하시고 통큰 꿈으로 가는 길을 여는 역할로 쓰임 받을 수 있도록 기도 해 주세요.


4) 북핵문제가 잘 해결되고 북미간에 평화협정이 맺어져서 우리 민족이 전쟁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그 일에 관계된 정치 지도자들과 참모들에게 하나님의 강권적인 역사와 간섭이

임하실 수 있도록.


5) 통큰 꿈을 잇는 통로가 열리고 여러 교류가 속히 다닐 수 있는 경협의 시대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경제적과 영적 물류의 강이 흘러가는 시대가 열리도록 기도해 주세요.


6) 유학을 보내기 위해 준비하는 3번째 유학생 선발이 잘 진행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세요.


7) 통꿈을 꾸며 다음세대 지도자를 세우는 일에 외국 및 한국에서 함께하는 동역자들이 많이 나타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세요.


8) 요즘 쓰고 있는 책이 있습니다. 한국 근대사 150년의 감추어진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너무나 민감한 역사의 진실을 드러내는 작업을 공정하고 부드럽게 잘 표현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간섭 가운데 이 책이 완성되도록 기도해 주세요.

9) 외국을 자유롭게 다닐 수 있도록 속히 제 영주권이 갱신 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세요.


때를 따라 새로운 사역지를 허락 하시고 새로운 영혼들을 섬기게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부족한

저희 가족을 위해 오랜 세월을 기도해 오신 여러 동역자님들과 도우시는 새생명비전교회와 귀한 성도님들의 가정에도 풍성하게 흘러가실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루카스종 가족 올림


**선교지의 보안 상, 모든 지형의 이름과 인물의 이름은 암호화 되었음을 알려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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